살며 생각하며/넋두리 방

내가 겪은 6 25의 쓰린 아픔들 .....!!

로마병정 2011. 2. 18. 00:41

 

 

 

우리나라 옛사람들의 인삿법은

언제고 만나면 안녕하셔요가 절대아닌

진지 잡수셨어요 ....^*^

 

 

    

 

 

노구에다 성치않아 누어있으니 한가한 생각속에 

가슴속에 자꾸 엄니가 앉아계십니다

 

돌아가신 오래비들도 밤마다 찾아드시고 

소풍끝내고 하늘로 되 돌아 가신 분들

아마도 같이계신가 어림하게 되네요. 

 

졸졸 졸 냇가의 징검다리를 건너실때마다

쪼그리고 앉아 손을 꼭 씻으시던 엄니

밝은 달 밤을 참 좋아하시던 엄니

그 행복해하시던 표정 아직도 선한데 ...

 

장충단 공원이 보이는 이층집을 팔고

일산으로 내려갔던 시기

몇년만인지는 기억에 없지만  6. 25 가 터졌고  

아버지는 납치  

엄니 마저 유치장으로 끌려 가셨습니다 

 

어느날 아침 할아버님 진시드셔요 들어서는 내 눈에

까매시진 할아버지 안색

몸부림치는 오빠들로해서 돌아가셨다는걸 알았습니다

 

할머님은 환갑해에 망령이 드셔서

혼비백산 산으로 들로 뛰시다가 돌아가셨고

부모님 안계신 집안 초상을

건건찝찔한 친척이랑 엉터리로 지냈습니다  

큰오래비 16 세였지 싶네요

 

날마다 받아자시던 엄니의 사식

어느날 부터 되 돌아 나왔습니다 

엄마까지 돌아가셨다는 경찰서 사람의 전갈

 

저 위 사진처럼 대문을 X 자로 척을 박고 

우리 여러남매 길 잃지 않으려고

기찻길을 따라 

서울 명륜동 외갓댁으로 향했습니다.

 

화젓가락을 가로 걸쳐놓은 화롯불엔

놋발이에 흰쌀밥이 모락모락 김올리며 올려져 있었지요 

대성통곡에 몸부림치시는 외할머님은 안중에도 없고

그 밥에만 정신이 팔렸던 우리들이었습니다.

 

오래비들이 짊어진 자그마한 봇짐속엔

엄니 한복 서너벌 

왜 그것만 꾸렸는지는 지금도 모릅니다.

 

삼일만에 외갓댁으로 쫓아오신 엄니

사식이 들어오질 않아

다 굶어죽었구나 쏘삭 쏘삭 간수 구어삶아 나오셨다던가

 

너희들이 되갔다 먹어라 편지도 넣으셨다던데

그런건 없었다는 오래비 말

 

다 뽑아간 총각무우 밭 언저리에 버려진 지치레기

그거 뽑아다가 싸래기 넣어 끓여서 때운 끄니 끄니

오빠들은 배 안고프다면서 그나마 건너뛰기 일수였고

 

방아간 뒷쪽으로 풀풀 나오는 보리겨

그걸로 개떡을 쪄서 살살 침만 발라 넘겼습니다

흙이 씹혀서 꼭꼭 씹을수가 없었거든요.

 

그렇게 살았답니다

지금 물가오름이요 까지꺼예요 ...^*^

 

몇년이 지난후

우리집을 팔아야지 내려갔던 큰 오래비

건건찝찔한 그 친척이 몽땅 팔아자시고 치매에 걸렸더랍니다

 

기막힌 사연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가는

아픈 며칠간이었습니다.

 

어느 초겨울 북촌을 돌아보다가 저 척 박혀있는 대문을 보고

그자리에 덜썩 주저 않았었답니다 

물론 질질 눈물까지 짰지요 사람들 몰래 ...^*^ 

 

이젠 아무도 기억해 낼 사람이 없을

이 슬픈 집안내력  

난 금강산도 백두산도 절대 가고싶질 않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