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생각하며/넋두리 방

오늘도 난 풀을 쑨다.

로마병정 2008. 5. 15. 10:04

 

 

 

 

서둘러 커단 남비에 물을 올린다

찹쌀가루 홰홰 풀어놓고 ...

 

이(齒)에 걸고 얼굴을 서너번 흔들어야

열무김치가 잘린다.

굴다리 앞 아저씨가 정성스레 갈아 준 칼로도

서너번 힘을 주어야 다듬어지고 ...

 

부농의 아들이라 으시대던 우리 영감님

갖가지 채소심어 가꾸고 싶다면서 얻은 자그마한 밭에

상추심고

아욱심고

열무심고

근대심고

고구마 감자 배추 강남콩 돌산갓

그리고 잎사귀가 많이 필요할꺼라면서 넓직하게는 들깨

오늘은 파를 심는단다.

아마 동네가 다 먹어도 남아돌아

혹여 이북까지 보내지지 않으려나 ...^*^

 

신답에서 성수

성수에서 2호선으로 갈아타고 삼성

삼성역에서 마을버스로 ...도시락까지 꾸려가지고

물 주러 간다

나 같으면 안 먹고 말텐데 ....

 

열무를 솎았어 김치 담그려고

흥분 된 목소리 핸드폰 저쪽에서 크게 들린다.

열무김치는 자기가 담그나 치 ...

그래서  난 김치담글 준비를 또 하고.

 

열무를 몽조리 뽑아야 한단다

그냥 두면 커단 무우가 되는 줄 알았는데

빳빳해 져서 그냥 두면 안 된다 누가 가르쳐 주더라나?

실은 나도

열무를 더 키우면

잘 생기고 실한 총각무가 되는 줄 알았으니까  ...

 

이틀에 사흘에 한번씩 뽑아오는 열무랑 얼갈이

이틀에 사흘에 한 번씩 김치를 담그었다.

그래서 이틀에 사흘에 한 번씩 풀을 쑤었고 ..

 

해 질 무렵에 들고 들어오는 푸성귀는

그 밤으로 김치를 담그었다

내버려 두었다가 이튿날 보면 한심해서 버리게 될까 봐 ...

 

햇볕에 그을러 눈만 반짝거리는 얼굴에

가득 기쁨얹고 들어서는 영감님

그 손에 들린 푸성귀를 홀대할수가 절대 없어

난 오늘도 꾸무럭 꾸무럭 악쉬어진 열무로 김치를 담그느니 ...

 

풀 쑬 준비가 항상 되어있는

영감님 못지않게 문제 많은 

난 팔푼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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